반기념비'의 가장 일반적인 주제는 역시 '홀로코스트' 이다. 유럽 의 예술가들은 유대인 희생자들을 단순히 애도하는 차원을 넘어서 한 시대에 대한 기억이 갖는 복잡한 의미체계에 관해 성찰했다. 그들은 홀로코스트에 대한 전후세대의 기억이 간접적인 방식으로 이루어진다는 사실에 착안한다. 사진, 영화, 역사책, 소설 등의 매체가 갖는 영향력 없이는 이전 세대의 역사적 경험은 다시 불러일으켜질 수 없다. 중요한 점은 집단기억이란 고정된 그 무엇이 아니라 이처럼 끊임없이 진행되어간다는 인식이다. 이런 점에서 많은 예술가들은
독일에서 유대인 희생자를 기리는 국가 차원의 단일한 기념물을 거림하려는 계획에 반대했다. 그것은 기억의 고착화와 도구화라는 전철을 다시 한번 반복하는 일에 불과했다. 기념비가 오직 집단기억의 부단한 진화 과정에 동참하는 한에서만 의미로울 수 있다는 점은 이제 자명해졌다.
설치미술가 크리스티앙 볼탄스키(Christian Boltanski)의 <유실된 집(Missing House)〉은 바로 이와 같은 사고를 담고 있다. 유실된 집은 말 그대로 더이상 존재하지 않는다. 남아 있는 것이라곤 오로지 비어 있는 부지뿐이다. 이 부지에 인접한 몇몇 집의 외벽에 이름 표가 부착된다. 여기에는 유실된 집에 마지막으로 거주하던 이들의 이름과 거주기간, 직업이 적혀 있다. 거주자들은 대부분 유대인들로 죽음의 수용소로 보내진 바 있으며, 남은 독일인 거주자들도 2차 세 계대전이 끝나기 얼마 전인 1945년 2월 연합군의 폭격으로 집이 유 실되면서 모두 자취를 감추었다. 볼탄스키는 이 집이 역사가 랑케 (Leopold von Ranke)의 무덤과 계몽주의자 멘델스존(Moses Mendelssohn)의 무덤 사이에 놓여 있음에 주목했다. 랑케가 독일 역사학의 상징이라면 멘델스존은 유대계 독일인으로 독일에서 유대 인 해방을 위해 고뇌한 대표적인 철학자였다. 이 구역에 멋진 기념비를 세우는 대신 박해받으며 사라진 유대인들의 이름표를 내건다.
사회주의권에서 근대 특유의 정치화된 기념비가 뒤늦게까지 고 수되었던 반면, 서구세계의 전쟁기념비는 근대성의 틀로부터 점점 더 벗어나는 모습을 보여준다. 20세기 후반에 이르면 소위 '반(反)기념비(countermonument)' 라 불리는 기념물(영상)이 출현한다. 포스트모더니즘 조류와도 무관하지 않은 이 낯선 기념비는 더이상 고정되어 존재하지 않고 일시적이거나 비가시적인 형태로 등장한다. 다양한 과거의 영상들은 그것들이 원래 그러했던 바대로, 잠시 등장하고 나서 곧바로 사라져버린다. 그것은 더이상 기념비가 아니다. 이미 1차 세계대전의 파란을 겪으면서 입체파나 표현주의에 속하는 모더니스트들은 기념비가 지닌 본래의 미적 형식에 대해 의구심을 품기 시작했다. 기념비 조형은 실제의 고통을 희생과 부활의 환영으로 아름답게 치장한 예술이었다. 모더니스트들이 보기에 유한하고 덧없는 현실세계의 고통을 있는 그대로 감내하지 않고 감추거나 위로하려는 모든 시도는 다 거짓이었다. 20세기 후반의 반기념비'는 기념비의 근본전제에 다시금 도전하는 것이다. 이 새로운 기념비는 스스로의 부정을 통해 기념비가 지닌 역사성을 드러내고 자 한다.